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대한민국 배구의 영원한 별, 장윤창 교수님께…

반응형

깊은 슬픔과 함께, 한국 배구 역사에 한 획을 그으신 장윤창 경기대 교수님의 서거 소식을 전합니다. 6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에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교수님의 헌신과 열정, 그리고 한국 배구에 남긴 발자취는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 돌고래 스파이커, 장윤창의 전설

 

197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한국 남자 배구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돌고래 스파이커' 장윤창. 그 이름만으로도 한국 배구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레전드입니다. 경기대 재학 시절, 국내 최초로 스파이크 서브를 선보였던 그의 혁신적인 플레이는 지금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마치 돌고래처럼 힘차고 역동적인 그의 점프와 폭발적인 스파이크는 당시 경기장을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었죠. 저 또한 당시 그의 경기를 TV로 보며 감탄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의 플레이는 단순히 기술적인 완성도를 넘어, 젊은 시절의 뜨거운 열정과 패기 그 자체였습니다. 15년간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 무대를 누비며 아시안게임 금메달 2개, 은메달 2개를 획득하는 쾌거를 이룬 그의 업적은 한국 배구 역사에 길이 남을 것입니다. 고려증권 창단 멤버로 활약하며 6차례의 리그 우승에 기여한 그의 활약상은 그가 얼마나 위대한 선수였는지 보여줍니다.

 

 

# 넘치는 열정과 헌신, 그리고 은퇴 이후의 삶

 

1994년 현역 은퇴 후에도 그의 열정은 식지 않았습니다. 미국 조지 워싱턴 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한국체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으며 끊임없이 배우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모교인 경기대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 힘썼고, 대한배구협회 기술이사, 대한민국스포츠국가대표선수회 초대 회장, 한국배구연맹 경기위원 등을 역임하며 한국 배구 발전에 헌신했습니다. 선수 시절의 화려한 경력뿐 아니라, 은퇴 후에도 배구계에 헌신하며 끊임없이 기여한 그의 모습은 진정한 스포츠맨의 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아들 장민국 씨가 농구 선수로 활약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는데, 아버지의 열정과 헌신이 아들에게도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감동했습니다. 아들의 성공은 장윤창 교수님의 삶을 더욱 빛나게 하는 또 하나의 이야기입니다.

 

 

# 영원히 기억될 레전드, 그리고 그리움

 

철저한 자기 관리로 유명했던 장윤창 교수님이지만, 안타깝게도 병마를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지난해 말 위암 말기 진단을 받고 투병 생활을 해왔다는 소식을 접하며, 그의 건강을 염려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술과 담배를 하지 않을 정도로 건강에 대한 그의 깊은 관심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병마를 이기지 못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그의 삶은 우리에게 큰 감동과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의 헌신과 열정, 그리고 끊임없는 노력은 영원히 우리 기억 속에 남을 것입니다. '돌고래 스파이커' 장윤창, 그의 이름은 한국 배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며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그의 업적과 헌신을 기억하며, 한국 배구의 밝은 미래를 응원합니다. 그의 뜨거웠던 열정과 헌신은 한국 배구 발전의 밑거름이 될 것이며, 그의 숭고한 삶은 우리에게 영원히 귀감으로 남을 것입니다. 다시 한번, 장윤창 교수님의 명복을 빌며, 그의 족적을 기억하겠습니다.

반응형